진시황제의 중국통일(기원전 221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기원전 195년/요동의 위만이 고조선에 망명
기원전 193년/위만, 고조선의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됨
중국 섬서성 임동 지방에는 진시황제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거대한 묘가
있다. 높이 47m, 둘레가 무려 1,410m에 달하는 대규모의 능으로 주위에는 이중의 성벽이
둘러쳐져 있다. 1974년, 묘에서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서 또하나의 거대한
무덤이 발견되었다. 동서 210m, 남북 60m에 달하는 이 무덤 속에는 등신대의 병사와 병마상이 가득차 있었다. 약 7천 개 정도 되는 이 상들은 아마도 시황제의 묘를 지키기 위해 매장된 것으로
보여진다. 진시황제의 중국통일 배경
진시황제-그는 500여 년 동안 제후들의 각축장이었던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사람이다. 이름은 정, 그의 출생에는 다음과 같은 비화가 전해진다.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와 있던 진나라 왕자 자초를 대상인 여불위가
도와주었다. 여불위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자초가 왕위에 오르도록 적극 후원했다. 그리고 자신이총애하던 여자까지 자초
에게 주었다. 그녀는 뱃속에 여불위의 아이를 갖고 있었다. 태어난 ㅏ이가
자초가 죽은 뒤 왕위에 올랐으니, 바로 시황제이다.
기원전 221년 천하를 통일한 그는 종래의 왕이란 호칭을 고쳐 황제라
하고 스슬 최초의 황제가 되었다. 진시황제의 중국통일 배경
시황제가 꿈꾼 것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다. 그는 주나라 이래로
시행되어 온 봉건제를 폐지하고 중앙에서 직접 관리를 파견하여 다스리는 이른바 군현제를
실시했으며, 화폐와 문자, 나아가 도량형과 수레바퀴 폭까지 통일시켰다.
그의 여러 치적 가운데 후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으로 만리장성 축조와
분서갱유가 있다. 시황제는 제자백가의 사상 가운데 법가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상은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법가는 군주가 정하는 법에 따라 통치한다는 사상으로, 신상필벌 원칙에
의해 엄격히 법을 적용, 신분의 고하나 귀천을 구별치 않는다는 상당히 혁신적 면모를 지닌
정치철학이었다. 진시황제의 중국통일 배경
진시황제의 중국통일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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